한국과 해외의 제로웨이스트 제도 비교 : 자취생의 관점
실천 이전에 환경이 결정한다는 것
제로웨이스트라는 말은 쉽게 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 단순한 정의를 실제 삶에서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자취생처럼 공간도, 시간도, 예산도 제한된 1인 가구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어떻게 버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느냐가 실천 여부를 가른다. 한국은 1인 가구 비율이 높고, MZ세대 중심의 환경 인식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리필스테이션, 다회용기 회수, 제로웨이스트 마켓 등 새로운 구조가 도입되고 있지만, 대부분 수도권 중심이거나 민간 단위에 머물러 있다.
반면 유럽이나 일본, 일부 북미 국가에서는 ‘누가 쓰레기를 줄이고 있느냐’보다 ‘국가나 지자체가 어떻게 덜 만들 수 있게 유도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차이는 제로웨이스트를 ‘의지’가 아닌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나온다. 이 글에서는 자취생 입장에서 실질적인 생활 실천에 영향을 주는 해외 제도와 한국 제도를 비교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지원 구조는 무엇인지, 앞으로 자취 1인 가구에게 꼭 필요한 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짚어보려고 한다.
일본의 제도 – 쓰레기를 버리는 데 비용과 시간이 드는 구조
일본은 자취생들에게 제로웨이스트를 습관이 아닌 규칙으로 체득시키는 대표적인 나라다. 대표적인 예는 가미카쓰마치(徳島県上勝町)라는 마을이다. 여기서는 쓰레기를 무려 45개 항목으로 분류해야 하며, 수거가 아니라 직접 재활용 센터에 가져다 버리는 구조다. 비단 시골 마을만의 특수한 사례는 아니다. 일본 전역의 많은 지자체에서는 쓰레기 배출을 위해 요일별로 품목을 나눠 배출해야 하고 지정 쓰레기봉투를 구매해야 하며 다 쓴 가전·소형 폐기물은 스티커 구매 후 사전 신청 후 배출할 수 있다. 즉, 버리는 데 돈과 시간이 드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이 구조 덕분에 일본의 자취생들은 물건을 살 때부터 “이걸 나중에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아무리 편리해 보여도, 복잡하게 버려야 한다면 처음부터 피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리사이클 숍이나 중고품 매장이 동네 단위로 잘 정착돼 있어, 물건을 팔고 넘기는 소비가 쓰레기 배출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국의 자취생에게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을 강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비 구조를 반성할 수 있는 장치를 자발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버리는 것’을 최소화하는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유럽 도시의 시스템 – 보증금 환급, 공공 리필이 실천을 유도한다
유럽 국가들의 제로웨이스트 정책은 적극적인 인센티브와 공공 기반 시설 확대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특히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1인 가구나 자취생을 포함한 전체 시민이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고, 참여하면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보증금 환급 제도(Deposit Return Scheme, DRS)다. 독일에서는 음료를 플라스틱병이나 유리병에 담아 구매할 때 0.25유로 내외의 보증금을 추가로 지불한다. 그리고 음료를 다 마신 후, 편의점이나 마트의 무인 환급기에 넣으면 바로 현금처럼 돌려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버리기 전에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로 작용한다. 게다가 마트, 약국, 대중교통 인근 등 생활 공간 내 설치율이 높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유럽의 대도시에는 공공 운영 리필스테이션, 무료 수돗물 정수기, 벌크샵 등이 활성화되어 있어 자취생이 굳이 무포장 제품을 찾으러 멀리 이동하거나, 비싼 가격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이제 막 리필스테이션이나 다회용기 사업을 시범 운영 중이다. 그러나 보증금 회수 인프라 부족, 민간 주도 구조, 정보 접근성 부족 등으로 인해 실제 자취생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은 제한적이다. 즉, 시스템은 있으나, 실천을 유도하는 구조는 아직 미약하다. 자취생에게는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게 접근성이다.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시스템이 있어야, 시작이 가능하다.
한국 자취생에게 필요한 제로웨이스트 제도는 무엇인가?
현재 한국의 제로웨이스트 정책은 소비자 중심 캠페인과 지원금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지자체의 포인트 지급, 입문 키트 제공, 다회용기 대여 사업 등은 초기 참여 유도에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인 생활 루틴으로 연결되기엔 물리적 구조가 부족하다. 특히 자취생 관점에서 보면, 다음 세 가지가 부재하다.
- 버릴수록 손해 보는 구조가 없다.
→ 분리배출 규칙이 느슨하고, 불법 배출에 대한 단속도 미비하다.
→ 버리는 걸 줄이기보다, 빨리 버리는 게 편해지는 구조다. - 공공 기반 제로웨이스트 시설이 부족하다.
→ 무포장 마트, 리필소, 중고 순환소가 대부분 수도권에 편중돼 있으며
→ 1인 가구 밀집 지역인 대학가·원룸촌에는 거의 없다. - 청년·1인가구 대상 맞춤 정책이 없다.
→ 대부분 정책이 가족 단위(가정용, 주부 중심) 또는 단체 참여 프로그램 중심이다.
→ 정작 ‘하루 1회 쓰레기를 버리는’ 실천 주체인 자취생은 정책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자취생 밀집 지역에 무포장 소비 공간을 만들고 버리는 데 불편함이 있는 구조를 설계하며 한 번 실천하면 보상받는 시스템을 확대하는 것이다. 버리기 전에 멈추게 하고, 실천하면 보상하는 정책 설계가 한국 제로웨이스트 정책의 다음 스텝이어야 한다.
제로웨이스트는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혼자 사는 자취생에게는 특히 그렇다. 시간, 공간, 비용의 제약 안에서, 실천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와 구조가 존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해외 국가들은 소비보다 배출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설계했고, 그 결과 줄이기 위해 고민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었다. 한국은 아직 ‘줄이자’는 말은 많지만, 줄일 수 있는 환경은 부족한 단계다. 앞으로 한국의 제로웨이스트 정책은 1인 가구라는 현실적 구조 안에서, 단기 실천이 아닌 장기 루틴이 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정책이 바뀌면, 행동은 달라지고 자취생의 생활도, 지구의 미래도 함께 바뀔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나은 의지가 아니라 의지를 도와줄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