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이 다시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한 이유
멈췄던 제로웨이스트 자취, 자꾸 마음에 남았다
앞선 글에서 썼듯이, 나는 분명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한때 멈췄다. 텀블러를 몇 번 씻지 못해 결국 일회용 컵을 다시 쓰고, 리필숍이 너무 멀어 대형마트를 찾게 되고 과포장된 식재료 앞에서 이번만은 그냥이라는 마음에 손을 뻗은 적도 있었다. 그런 선택들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실천은 멀어지고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손수건과 수세미는 점점 사용되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천을 포기한 이후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손에 쥐어진 비닐봉지를 볼 때마다 "한때는 이걸 줄이려고 그렇게 애썼었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잔상처럼 내 일상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의식 과잉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한 번 실천해 봤던 기억이 오히려 죄책감보다 더 강한 책임감으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텀블러를 꺼내 편의점 커피를 주문하고 그대로 들고 나가는 모습을 봤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사소한 장면이었겠지만 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걸 그만뒀을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는데, 나도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실천은 나에게 지적 자극이 아니라,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도 언젠가는 저 모습처럼 자연스럽게 실천했던 사람이었고, 내가 다시 시작하지 못했던 건 게으름이 아니라 삶의 흐름 안에 실천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다시 천천히, 가볍게, 실천을 재시작하기로 했다. 큰 다짐 없이, SNS에 선언도 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다회용기를 꺼내고, 텀블러를 말려서 넣고, 이번엔 모든 걸 잘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못하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진 말자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작은 제로웨이스트 루틴을 되찾으며 느낀 생활의 가벼움
다시 실천을 시작하면서, 나는 한 가지 전략을 세웠다. ‘큰 거 말고, 작은 루틴부터 되찾자.’ 그게 바로 내가 처음 실천했던 손수건이었다.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휴지를 덜 쓰기 위해 시작했던 손수건. 다시 그것부터 꺼냈다. 주머니에 손수건 하나 넣는 일은 사실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하나로 하루 동안 무언가를 줄이고 있다는 뿌듯함이 다시 살아났다. 그 다음은 텀블러였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들고 다니진 않았다. 그냥 오전 외출할 때만 가져갔다. 집에 와서 물로 한 번 헹구고, 다음 날 다시 들고 나갔다. 내가 느꼈던 세척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어떻게 루틴을 바꿔야 할까를 고민하며 큰 컵 대신 세척이 쉬운 구조의 텀블러로 바꿨고, 가방 안에 잘 들어가는 형태로 바꾸니 다시 쓰게 되었다. 이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서 나는 다시 제로웨이스트를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다시 나답게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 무리해서 실패했기에 이번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계속해보자는 자세가 나를 더 편하게 만들었다. 자취방 냉장고 앞에서 오늘은 뭘 사지?를 고민할 때도 버려지는 게 적은 선택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다시 실천을 이어가는 힘이 생겼다.
자취생에게 제로웨이스란 환경보다 나 자신을 위한 실천
다시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 실천이 지구를 위해 해야 하는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었고, 실천하지 못하는 날엔 이상하게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재시작 후에는 그런 부담이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 이 실천이 환경보다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다회용기를 챙겨 다니는 일은 처음엔 일회용기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지금은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고 깔끔한 식사를 하고 싶은 내 욕구에 더 가깝다. 일회용 도시락보다 내가 직접 담아 온 음식은 더 정돈돼 있고, 다 먹고 나서 쓰레기를 찾느라 헤매는 일도 없다. 세제를 리필하는 행위도 이제는 플라스틱 감축보다는 내가 어떤 성분을 내 피부에 쓰고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크다. 이런 변화는 내 자취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은 늘 즉흥적으로 소비하고,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샀다가 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식재료를 사기 전 냉장고를 먼저 확인하고, 무언가를 사기 전에 이 물건을 정말 쓸 수 있는지, 버릴 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은 단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계산이 아니라, 내 삶을 조절하는 감각을 되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자취생에게 삶의 주도성은 생각보다 얻기 어렵다. 좁은 공간, 한정된 예산, 빠듯한 시간 속에서 어떤 선택도 최선이기보단 가장 간편한 것에 머물기 쉽다. 그런 구조 속에서 제로웨이스트는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준을 내 쪽으로 다시 가져오는 일이 되었다. 그게 곧 삶의 주도권이었다. 이후로 나는 습관처럼 반복하던 선택을 하나하나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예전엔 마트 세일가 중심으로 장을 봤다면, 지금은 내가 먹을 수 있는 양만 사려고 한다. 불필요한 택배를 줄이고, 가능한 직접 사러 가는 걸 택한다. 외출 전엔 장바구니와 텀블러가 자연스럽게 챙기고 다회용기 수거함 근처를 지나는 날엔 일부러 돌아가서라도 물건을 반납한다. 이런 루틴이 내게 주는 건 나는 환경을 아끼는 착한 소비자라는 자부심이 아니라,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있다' 실질적인 자신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지구보다도 더 가까운 존재인 나 자신을 위해 제로웨이스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 다르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지만, 같은 방향을 걷고 있다
다시 실천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그동안 실패했던 기억이 꼭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런 실패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조금 더 유연하게, 지속 가능하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진짜로 깨달았고,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한 번쯤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다 중간에 멈췄던 적이 있을 거다. 그게 실천의 끝이 아니라는 걸,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실천은 언제나 곡선처럼 이어진다. 가끔 멈춰도 괜찮고, 돌아가도 괜찮고, 다시 돌아오는 길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지만, 결국은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드는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당신을 다시 이 길 위에 올려줄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다시 이 길을 걷고 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이번에는 멈추더라도 돌아오는 걸 멈추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