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이 알아야 할 제로웨이스트 법제화 현황
자취생의 제로웨이스트를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는 자취생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텀블러를 들고 카페에 갔지만 종이컵밖에 제공되지 않거나, 리필세제를 사려고 했지만 가까운 동네엔 매장이 없어 결국 일반 제품을 선택하게 된 일. 사실 실천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지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구조 앞에 멈칫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요한 건 억지로 실천을 밀어붙이는 규제가 아니라 그 실천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환경을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덜 버리고, 덜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일상적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자취생처럼 혼자 생활하며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고,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사람에겐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선택이 더 쉽게 보이게 만들어주는 정책이 절실하다. 법은 그 선택지 중 하나로, 누군가를 통제하는 도구라기보다 공통의 기준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안내선에 가까워야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유럽, 아시아, 북미 주요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제도화해왔는지, 그리고 그런 구조가 개인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자취생의 삶 안에서 제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실천에 다가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를 비교해보려 한다.
유럽: 규제 중심의 강력한 제도와 ‘생산자 책임 강화’
유럽은 세계에서 제로웨이스트 법제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은 단순 분리배출을 넘어서, 생산자 책임, 리필 유도, 플라스틱 퇴출 등 전방위적 접근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1) 독일: 분리배출과 생산자 책임이 법으로 연결된 나라
독일의 ‘포장재법(Verpackungsgesetz)’은 모든 포장재에 대해 생산자가 재활용 책임을 지도록 명문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등록되지 않은 포장재 제품은 아예 판매가 금지된다. 재활용율이 낮거나 분리 어려운 재질에는 추가 부담금이 부과되며, 소비자가 올바르게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라벨링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각 아파트와 건물에는 4~6종 이상의 분리수거통이 구비되어 있으며, 수거업체와 지자체가 협력해 정기적 수거와 교육 자료 제공까지 담당한다. 이런 시스템은 혼자 사는 자취생도 별도의 정보 탐색 없이 구조 안에서 실천이 가능하게 만든다.
2) 프랑스: 무포장 판매와 리필 의무화 법안
프랑스는 2020년 ‘순환경제법(Loi Anti-Gaspillage)’을 통해 대형마트와 브랜드 매장에 무포장 판매 및 리필 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 법에 따라 2030년까지 슈퍼마켓 내 전체 제품의 20% 이상을 무포장 상품으로 구성해야 하며, 생분해성 비닐, 재사용 용기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교육기관, 사무실, 공공시설에서의 일회용 컵과 식기 사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이처럼 유럽은 친환경 제품 장려 수준을 넘어 법을 통해 친환경 선택이 기본값이 되도록 만들고 있다. 자취생 입장에서도 이런 구조라면 환경을 위해 뭘 더 해야 할까보다는, 시스템이 나를 어떻게 도와주는가라는 관점으로 실천이 가능해진다.
아시아: 인식은 높지만 실행은 미흡, 한국과 일본의 차이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상대적으로 제로웨이스트 인식이 높지만 법제화의 강도나 실효성 면에서는 유럽에 비해 약한 구조를 보인다. 그렇다고 시도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1) 일본: 분리수거는 철저하지만, 제도적 일관성 부족
일본은 자원 유효 이용 촉진법과 용기·포장재 재활용법을 통해 모든 가정에 세분화된 분리배출 규칙을 적용하고 있으며,지자체별로 15종 이상의 분리항목이 존재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복잡한 기준과 브랜드 중심 재활용 미달이다. 재사용이나 리필 유도 정책은 상대적으로 약하며, 제조사에 대한 의무보다는 소비자 책임 강조형 구조가 많다.
2) 한국: 제도는 있으나 시민 접근성과 실효성이 낮다
한국은 2021년 자원순환기본법을 개정하며 플라스틱 감축 목표와 다회용기 시스템 구축을 추진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법적 구속력보다는 권고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회용기 보증금제는 몇몇 지자체와 시범사업에 국한되고 있고, 리필숍 인증제나 무포장 판매 가이드라인 역시 표준화되지 않아 시민 체감도가 낮다. 자취생 입장에서는 실천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거나 리필하려고 했지만 관련 매장이 너무 멀다는 경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도는 존재하되, 일상 속 실천 루틴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이 아시아권의 과제다.
북미: 지방정부 주도형 혁신과 시민참여 모델의 병행
북미에서는 캐나다와 미국 일부 도시를 중심으로 강력한 제로웨이스트 정책이 실험되고 있다. 다만 연방 수준이 아닌 주·도시 단위의 분권형 제도 운영이라는 점에서 유럽과는 차이가 있다.
1)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시 전체가 제로웨이스트 목표
샌프란시스코는 이미 2009년부터 제로웨이스트 도시 선언과 함께 ‘Mandatory Recycling and Composting Ordinance’를 시행해 왔다. 이 법에 따라 모든 가정과 사업장은 음식물·재활용품·일반쓰레기를 의무 분리 배출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벌금 부과 대상이 된다. 또한 ‘Refill SF’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들이 무료 리필 스테이션 맵을 앱으로 확인할 수 있고, 학교와 카페,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다회용기 사용을 적극 도입 중이다.
2) 캐나다 밴쿠버: 일회용품 퇴출 로드맵
밴쿠버는 2021년 ‘Single-Use Item Reduction Strategy’를 법제화하며 점진적으로 일회용 컵, 빨대, 수저 등을 금지하거나 유상화하고 있다. 또한 지역 내 제로웨이스트 인증 음식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상점이 리필 용기 사용, 포장재 재활용률, 다회용기 세척 인프라를 충족하면 시에서 공식 인증 배지를 부여한다. 이런 시스템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고, 자취생처럼 개별 판단이 어려운 1인 가구에게는 실질적인 선택 기준이 되어준다. 북미 모델은 강제력보다는 정보와 인센티브, 커뮤니티 연계 중심이다. 이는 유럽처럼 일률적인 규제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발적 실천을 제도화하는 전략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자취생에게 필요한 건 '선택 가능한 구조'다
제로웨이스트 법제화를 살펴보면, 결국 실천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사람들의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특히 자취생처럼 제한된 정보, 공간, 시간 속에 사는 사람에게 제로웨이스트는 특별한 실천이 아니라 생활 반경 안에 구조화되어야 할 선택지다. 유럽은 친환경 선택을 법으로 강제했고, 북미는 정보와 인센티브로 유도했다. 한국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홍보나 캠페인이 아니라, 자취생이 아무것도 몰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리필 가능한 제품은 리필 가능하다는 표준 마크가 있어야 하고 다회용기는 반환할 수 있는 장소가 앱에서 지도처럼 보이도록 해야 하며 쓰레기 분리 기준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일관성 있게 제공되어야 한다 자취생의 실천은 의지보다 거리와 시간 안에 있다. 그리고 그 거리를 좁혀주는 건 오직 법과 제도뿐이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혼자 살아도, 복잡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환경을 지킬 수 있는 구조가 법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참고 출처>
- 독일 VerpackG 포장재법 원문 / 독일 환경청
- 프랑스 순환경제법 개요 (Ministère de la Transition écologique)
- 일본 자원유효이용촉진법
- 대한민국 자원순환기본법 개정안 요약 (환경부, 2023)
- San Francisco Ordinance 100-09
- Vancouver Single-Use Reduction Bylaw
- OECD Environmental Policy Review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