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자취일기

제로웨이스트가 놓치기 쉬운 사각지대

limcheese 2025. 7. 12. 11:10

제로웨이스트가 놓치기 쉬운 사각지대

 

누구를 위한 제로웨이스트인가

 그동안 나는 자취생의 시선으로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대해 꾸준히 탐색해 왔다리필숍, 분리배출 앱, 순환 포장 시스템, AI 기술, 인증제도, 생애주기 분석(LCA) 등 다양한 시스템과 서비스들이 어떻게 혼자 사는 사람의 실천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며 구조적인 실천 루틴에 대해 글을 써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내 조건이 그것을 허용했기 때문 아닐까?” 손으로 리필통을 들고 다니고, 스마트폰으로 분리배출 앱을 쓰고, 온라인 친환경 몰에서 주문한 상품을 편하게 수령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비장애인이고,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며, 기본적인 이동과 판단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곧 제로웨이스트 실천 구조 안에서 배제된 사용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장애인과 노년층, 특히 정보 접근성과 물리적 접근성이 제한된 생활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실천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들어올 수 없게 설계된 구조 때문에 실천의 테두리 바깥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글에서는 그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제로웨이스트가 놓치고 있는 접근성의 사각지대, 그리고 그 안에서 실천하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려 한다. 자취생인 나에게 익숙했던 실천들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먼 거리의 일인지 깨닫게 된 이후의 기록이다.

 

장애인이 마주한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구조적 장벽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종종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실천 자체가 장애인의 일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접근 불가능한 매장 구조, 정보 전달 방식의 한계, 사용 전제가 비장애인 중심인 제품 설계 등은 장애인에게 실천의 기회 자체를 차단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리필숍 이용의 접근성 문제다. 서울 내 50개 이상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직접 조사한 환경단체 ‘그린라이트서울’의 자료(2023)에 따르면, 이들 매장 중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곳은 12%, 점자 안내나 시각장애인 안내 시스템을 갖춘 곳은 단 1곳도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매장은 협소한 공간에 진열된 개방형 용기 구조라 시각 또는 지체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제품을 탐색하고 리필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정보 접근 방식도 매우 제한적이다. 많은 친환경 제품이나 제로웨이스트 실천 가이드는 모바일 중심으로 제공되며, 텍스트 기반의 빠른 이해를 전제로 한다. 청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은 영상 자막이 없거나, 설명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면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다. 음성으로만 안내되는 분리배출 키오스크, QR 코드 중심 제품 정보도 시각장애인에게는 실질적인 장벽이 된다. 이러한 한계는 단지 불편함 수준이 아니라,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자원순환센터의 사례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중 일부는 분리배출 규정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반복적인 부적정 배출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정보의 부재가 오히려 벌칙으로 되돌아오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장애인들 역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다는 점이다. 2022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1%가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 실천율은 28.7%에 불과했다. 그 격차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지금의 실천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사람만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고령층에게 제로웨이스트는 왜 멀게 느껴질까

 고령층, 특히 독거노인이나 정보 취약 노년층에게도 제로웨이스트는 실천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실천 영역이다.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격차와 복잡한 정보 체계 때문이다. 대부분의 제로웨이스트 제품이나 서비스는 모바일 앱, 온라인 플랫폼, QR 코드, 바코드 검색 등 디지털 사용 경험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스마트폰 이용률은 68%에 그치며, 환경 앱이나 분리배출 안내 앱 사용 경험은 10% 미만이다. 이런 환경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배출하기 전 라벨을 제거해야 한다거나, 유색 페트와 투명 페트는 따로 분리해야 한다는 안내는 노년층 입장에선 너무 복잡하거나 아예 처음 듣는 정보일 수 있다. 이해가 어렵고 시행착오가 반복되다 보면 결국 "그냥 다 일반쓰레기로 버린다"는 선택을 하게 된다. 또한 최근 확대되고 있는 리필숍, 무포장 상점 역시 노년층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공간이다. 제품을 자로 재고, 무게로 계산하며, 셀프포장을 직접 해야 하는 과정은 치매 초기 증상이 있거나 손떨림, 시력저하, 인지장애를 가진 노년층에게 매우 부담스럽고 피로한 구조다. 게다가 물리적인 인프라도 배제되어 있다. 계단 구조, 좁은 출입문, 빠르게 지나가는 안내 문구, 직원 부재 매장 등은 노년층이 제품을 탐색하고, 실천을 반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다. 환경실천연합회가 2022년 고령층 대상 환경 실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81.2%가 "환경을 위해 실천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정보를 찾기 어렵다",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는 응답이 60% 이상을 차지했다. 이 또한 실천력 부족이 아니라,실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구조 설계가 만들어낸 격차였다.

 

 

모두를 위한 제로웨이스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설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장애인과 고령층이 함께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실천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의지가 아니라 설계다. 친환경 실천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만 진짜 지속 가능하다. 먼저 인프라 측면에서, 리필 매장과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자동문, 점자 라벨, 음성 안내 시스템, 휠체어 진입 경사로 설치, 고령자 안내자 또는 실천 도우미 배치 등이 필요하다. 이런 조치는 단지 장애인을 위한 특수한 설계가 아니라, 모든 사용자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정보 접근성 역시 중요하다. 모바일 앱 중심의 정보 구조를 보완해 오프라인 안내 책자, 음성 브리핑, 큰 글씨 포장 라벨링, 고령자 대상 분리배출 교육 영상의 자막 제공 등 비디지털 환경에서도 동등한 정보 접근이 가능해지게 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 단위에서 장애인센터, 노인복지관, 주민센터 등과 연계된 친환경 실천 교육 프로그램, 배출 도우미, 이동형 리필소, 텀블러 세척 서비스 같은 보조적 실천 구조를 제도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해외에선 이미 이런 시도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음성 분리배출 앱, 독일 함부르크시에서는 고령자를 위한 방문형 리필 배송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실험이 더 많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제로웨이스트란 쓰레기를 줄이는 실천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쓰레기 취급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실천이기도 하다. 장애인과 노년층이 환경 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실천할 수 없도록 설계된 세상이라면 그 실천은 절대 완전하지 않다. 이제는 “누가 참여하고 있는가?”만큼이나, “누가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묻는 감각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