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실천에서 소외되는 계층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없는 사람들
이전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실천 구조가 장애인과 고령층에게 사실상 접근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분하지만, 정보 접근, 이동성, 사용 편의성 등 핵심 조건이 배제된 채 할 수 있는 사람만 실천하라는 메시지가 암묵적으로 전달되는 현실이었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글에서는 저소득층, 주거취약계층, 사회적 약자 등 경제적·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과연 환경 실천의 구조 안에 포함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왜냐하면 환경 실천이라는 것은 종종 개인의 윤리 혹은 의식 있는 소비로 축소되며 그 실천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력, 시간, 주거 조건, 자원 접근성은 논의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회용을 줄이자”는 캠페인은 다회용 텀블러를 사고, 포장 없는 식재료를 구매하고, 리필숍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선택권이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 고시원 거주자, 기초생활수급자, 노숙인, 1일 2~3교대 근무자 등 생활 자체가 유동적인 계층에게 환경을 위한 소비는 너무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에서 이탈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설계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지원이 있다면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저소득층의 소비 현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좋은 소비로 인식되는 현상은 결국 환경을 생각할 수 있는 선택권과 구매 여력이 있는 계층을 전제로 설계된 실천 구조임을 보여준다. 무포장 비누, 대나무 칫솔, 친환경 생필품, 스테인리스 다회용기 등은 일반 제품보다 단가가 높은 경우가 많고, 오프라인 기준으로는 대부분 도심이나 대단위 상권, 또는 제로웨이스트 브랜드가 입점한 고소득 지역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 특히 일용직 노동자나 주거취약계층, 1인 최저생계자에게는 무포장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나 시간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 그들에게 환경 실천은 가까이 있는 소비 환경에서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과 환경부 공동조사(2023)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1인가구 중 약 71%는 “최근 6개월 내 제로웨이스트 관련 제품이나 매장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구매처가 멀거나 없다”(52%), “일반 제품보다 비싸다”(43%), “사용 방법이 불편하다”(36%)가 주요 원인이었다. 이처럼 공간, 시간, 비용 측면에서 저소득층에게는 제로웨이스트 제품의 접근성이 낮고, 기본적인 위생·보관·세척 조건조차 충족되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 특히 고시원, 쪽방, 임시거주시설 등에서는 세면·조리 공간이 없거나 제한되며, 공동 사용의 불편함으로 인해 한 번 쓰고 버릴 수밖에 없는 소비 형태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리필숍과 같은 실천 공간이 주로 중산층 밀집 지역에만 존재한다는 점도 큰 장벽이다. 서울시 제로웨이스트 리테일 지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시내 제로웨이스트 매장 70여 곳 중 약 80%가 강남구, 마포구, 성동구, 서초구, 종로구 등에 집중되어 있고, 동작구, 금천구, 중랑구, 관악구 등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지역은 매장 수가 1곳 이하이거나 아예 없는 지역도 존재했다. 이러한 불균형은 실천의 격차를 구조적으로 확대시킨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은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실천할 수 있는 조건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의식이 낮은 소비자로 오해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쓰레기 줄이기보다 생존이 먼저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환경 실천의 전제는 보통 삶의 안정, 정보에 대한 접근, 실천에 투자할 시간이다. 하지만 많은 저소득층에게는 이 세 가지 모두 부족하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생존 자체가 삶의 중심에 있을 때, 쓰레기를 줄이거나, 재사용하는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플랫폼 노동자, 1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 저소득 가정의 한부모 가장 등은 식사를 외부에서 해결하는 일이 일상이며, 그 과정에서 일회용 포장재 사용은 불가피하다.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저소득층 소비 실태와 환경 대응 능력'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 응답자의 64.5%는 “다회용기 세척에 드는 물, 세제, 시간 자체가 부담된다”고 답했고, “텀블러나 장바구니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응답도 전체의 48.2%에 달했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실천이 어려울 뿐 아니라, “내가 실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정서적 거리감도 함께 드러냈다. 또한 주거 취약계층의 경우 쓰레기를 제대로 버릴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쪽방촌, 반지하, 노숙인 임시시설 등에서는 지정된 분리배출 장소가 멀거나 존재하지 않으며, 공공시설의 배출 기준이나 일정을 파악하기 어려워 결국 혼합배출, 단속, 과태료 처분이 반복되는 불이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게다가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의식 있는 소비자를 윤리적인 존재로 보상하고, 그렇지 못한 소비자를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비가시적 낙인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왜 재활용을 안 하냐, 왜 다회용기를 안 쓰냐는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단지 몰랐던 실천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천할 수 없었던 아픔을 건드리는 말이 되기도 한다.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구조적 접근
제로웨이스트 실천에서 저소득층, 주거취약계층을 포함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천할 수 없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를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의 환경 실천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이다. 몇 가지 구조적 접근은 다음과 같다.
- 리필소와 순환 용기 시스템을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설계하고, 세척·관리 인프라를 공공이 제공하는 방식
(공유 세척소, 공공 빨래방과 연계된 다회용기 회수소 등) - 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층 대상 ‘제로웨이스트 키트 무상 지원’ 프로그램
(다회용기 + 교육자료 + 순환용 포장 시스템) - ‘저소득층 쓰레기 관리 비용 감면 제도’와 연계한 친환경 실천 인센티브
(정량제 봉투 할인, 분리배출 우수자 포인트 지급 등) - 쪽방촌 등 주거불안정 지역 중심으로 쓰레기 분리배출 교육 + 관리 도우미 배치
해외에서는 실제로 이런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저소득층 대상 리사이클링 교육과 함께 공공기관과 연계된 '순환 쇼핑 키트' 무상 대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권리를 시민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영국의 환경복지재단은 “Environmental Equity for Low-Income Households” 프로젝트를 통해 쓰레기 처리비 지원, 친환경 생필품 보급, 생활교육을 통합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환경 정책이 더 이상 개인 책임 강조형 캠페인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도 실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할 때다. 제로웨이스트는 누군가에게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조건의 문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조건을 함께 만드는 일에 좀 더 많은 자원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