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자취일기

자취생이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언어 재설계

limcheese 2025. 7. 13. 22:06

자취생이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언어

제로웨이스트 실천 '쓰레기’라는 말부터 다시 생각해보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단어는 '쓰레기'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분리배출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은 뒤 남은 포장재를 버릴 때, 혹은 다 쓴 생필품의 용도를 고민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이건 그냥 쓰레기니까 버려야지”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 모든 것이 쓰레기일까? 쓰레기라는 단어에는 더 이상 쓸모가 없고, 제거되어야 하며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사물에 대해 관심을 거두고 관계를 끊는 방식으로 대하게 된다. 이 개념은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철학과는 완전히 반대다. 제로웨이스트는 버리지 않기의 실천이 아니라, 더 오래 쓰고, 새로운 용도로 순환하며, 쓰레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 고민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실천은 언어 사용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환경사회학자 케이트 오도넬은 이렇게 말한다. “언어는 쓰레기를 현실화한다. 우리가 ‘버린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쓰레기가 된다.” 이런 문제의식은 특히 자취생 같은 1인 생활자에게 더욱 중요하다. 누군가와 쓰레기를 함께 관리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과정 없이 모든 쓰레기의 정체성을 내가 정하고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자취생이 실천할 수 있는 언어의 재설계를 통한 제로웨이스트 루틴 변화를 함께 살펴본다.

 

 

 

단어 하나가 제로웨이스트 실천 방식을 바꾼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결국 언어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쓰레기’라는 단어는 단순한 명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는 우리가 그 물건을 더 이상 가치 없고, 처리 대상이며, 가능한 한 빠르게 없애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버려야지”라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고민 없이 쓰레기통으로 손을 뻗는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플라스틱 뚜껑이 실제로 재활용이 가능한지, 세척이 필요한지, 대체 용도로 쓸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쓰레기’라는 말 한마디가 이미 그 모든 판단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그 물건을 자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 흐름이 시작된다. 자원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활용 가능성과 순환 가능성, 가치를 담고 있는 존재를 전제한다. 즉, 그냥 버릴 대상이 아니라 다시 쓸 수 있는 무언가, 혹은 돌봄과 관리가 필요한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취생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남은 플라스틱 용기를 대할 때, “이건 쓰레기니까 버려야지”라고 생각하면 씻을 필요도, 분리수거 항목을 고민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냥 치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자원이니까 정리하자”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는 ‘어떻게 씻어야 할까’, ‘라벨은 떼야 하나?’, ‘재활용되려면 무엇을 더 해야 하지?’ 같은 실천적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단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언어 재설계는 행동 재설계의 첫 출발점이 된다. 이런 시도는 국내외 제로웨이스트 커뮤니티와 교육 현장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환경 감수성 향상 프로그램’에서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쓰레기’라는 단어 대신 ‘자원’, ‘순환물’, ‘다 쓴 재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하며 교육 과정 내내 그 언어를 반복 학습하도록 유도한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버릴 물건”이 아니라 “재정리할 자원”, “돌려보낼 재료”라고 표현한다. 이런 방식은 결국 아이들의 행동 루틴만 아니라 가치관과 책임감까지 바꾸는 효과를 만든다.

 

 자취생 역시 이 구조를 그대로 일상에 적용할 수 있다. 특히 1인 가구는 혼자 판단하고 처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언어의 선택이 갖는 영향이 더 직접적이다. “이건 자원이야”라고 스스로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버리는 행위에 수반되는 생각이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쓰레기 배출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자원이라는 언어는 그 물건을 당장의 처치 대상이 아니라, 순환할 수 있는 물질이라는 더 큰 이야기 안에 놓이게 하는 장치가 되어준다. 이건 단순한 미화가 아니다. 의식적 언어 선택이 실천의 동선을 바꾸고, 그 동선이 반복되면 결국 습관이 되는 행동 언어의 재설계 구조인 것이다.

 

 

 

말이 바뀌면 구조가 바뀐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이 크게 중요한 일일까? 사소해 보이지만, 언어는 곧 사고의 틀이고, 생각은 실천을 설계하는 바탕이 된다. 특히 자취생처럼 혼자서 실천의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말의 선택이 생활 구조를 좌우할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언어 습관이 실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1. “쓰레기 버리자” 대신 “자원 정리하자”
    버린다는 말은 끝내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정리하자는 말은 관리와 순환을 전제한 표현이다. 이 말 한마디로 자취방에서 분리수거를 미루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2. “대충 씻자” 대신 “깨끗이 씻어야 다시 쓰일 수 있지”
    다회용기나 분리배출 품목을 세척할 때 귀찮음을 줄이는 말이다. 이 말은 행동에 의미와 책임감을 부여한다.
  3. “이건 못 써” 대신 “어디에 다시 쓸 수 있을까?”
    폐기 직전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드는 말. 유리병, 상자, 천가방 등 많은 자취생들이 실생활에서 재활용해볼 수 있다. (공병 → 냉장고 소스통, 배송 상자 → 서류함) 
  4. “냄새나는 쓰레기” 대신 “오염된 자원”
    이 표현은 감정적 거리두기를 줄여준다.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가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표현 변화는 단순히 멋진 말로 바꾸는 게 아니라 그 물건과의 관계 방식을 전환하는 언어 설계다. “이건 내가 써서 끝난것”이 아니라, “내가 쓰고 다음을 위해 보내는 것”이라는 개념을 습관화하는 과정이다. 실제 국내 환경 커뮤니티에서는 분리배출 체크리스트를 “자원 회수 루틴표”로 명명하거나, 쓰레기 챌린지를 “하루 자원 기록일기”로 바꿔 참여자들에게 긍정적인 감정과 실천의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후기를 남겼다. “그냥 쓰레기 배출하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기분이었는데 자원 관리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취생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활 루틴 속에 ‘말을 통한 실천 구조’를 넣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냉장고 옆에 '버리는 날'이 아니라 ‘자원 정리 요일’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재자원함’이라고 표기하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적 실천이 의식적 행동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는 그 물건과의 마지막 관계 맺음이자, 환경과 다시 연결되는 첫 단추다. 말이 바뀌면 실천도 바뀌고, 그 실천은 우리의 삶을 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더 작고, 말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자취생이 만드는 순환 언어

 앞선 문단에서 살펴본 것처럼, 언어는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루틴을 만든다. 그렇다면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가장 먼저 바꿔야 하는 건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내가 쓰는 단어, 내가 붙이는 이름, 내가 물건을 부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자취생은 혼자 산다는 것만으로 이미 대부분의 물건과의 관계를 1:1로 맺고 있다. 누군가와 역할을 나누거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각종 물건의 생애주기를 내가 정하고, 결정하고, 마무리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오늘 배달 온 음료 컵은 내가 손에 쥐었을 때부터 소비에서, 처리에서 배출 또는 순환이라는 일련의 흐름이 시작된다. 그 모든 단계는 결국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취생은 이름 붙이기의 권한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건 쓰레기야”라고 부르는 대신 “이건 자원이지”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그것은 단지 행동 하나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인지 규정하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언어는 곧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자취 생활은 종종 효율이 강조된다. 시간을 줄이고, 가격을 비교하고, 공간을 절약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그 흐름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손이 더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쓰레기’라고 치워버리는 대신 ‘이건 자원이야’라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일은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관계를 다시 맺고, 내가 만든 흔적에 대해 책임을 지는 루틴으로 연결된다. 이건 단지 환경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정리하고, 내 생활을 하나의 순환 구조로 바라보는 감각 훈련이기도 하다. 버리는 나에서 되돌리는 나로, 없애는 사람에서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그 변화를 만드는 출발점이 바로 말이다. 언어의 변화는 실천을 지치지 않게 만든다. 억지로 실천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나의 언어가 나의 선택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실천을 위한 정보만 넘쳐나는 시대다. 어떻게 버려야 할지, 어디에 어떻게 넣어야 할지,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왜 해야 하는가”라는 감각을 내 안에 남겨두는 일이다. 자취방 안에서 나만 쓰는 말들이 생긴다면 그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실천의 감정적 기반이 된다. “자원 정리 완료”, “순환 물품 수거함”, “다음 주 자원 이동일” 같은 말이 혼잣말처럼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혼잣말이 언젠가는 내가 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작은 문장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