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자취생이 배울 수 있는 프랑스의 실천 구조
제로웨이스트 자취생에게 프랑스가 흥미로운 이유
1인 가구 혹은 자취생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고 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현실적인 벽이 있다. 소량 구매가 어렵고, 음식물 쓰레기가 자주 생긴다. 특히 외식을 줄이고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 식재료 보관, 잉여 식품 처리, 유통기한 문제로 인해 오히려 폐기물이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에서 프랑스는 자취생 입장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국가다. 단지 정책으로서 제로웨이스트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법적 장치와 사회적 인프라"를 함께 설계해 자취생도 체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2016년 세계 최초로 도입된 ‘대형마트 식품 폐기 금지법’이다.
이 법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폐기하는 대신 지역 푸드뱅크·비영리기관에 기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전역에서는 판매되지 않은 음식이 시민들에게 재배분되며 이 과정에서 공유 냉장고, 자투리 식재료 앱, 음식 나눔 플랫폼 등 다양한 실천 도구가 등장했다. 이러한 구조는 혼자 사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제로웨이스트 자취생을 위한 공유 냉장고와 식품 재분배 플랫폼
프랑스에서 제로웨이스트 자취생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제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유 냉장고(Frigos Partagés)’다. 공유 냉장고는 처음에는 사회적 기업과 지역 커뮤니티에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지자체와 협동조합이 운영 주체로 참여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설치 장소도 매우 다양하다. 대학교 앞, 복합 문화 공간, 마을 커뮤니티 센터, 청년 임대주택 내 등 자취생의 생활 반경 안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사용 방식은 간단하다. 각 냉장고 옆에는 기부 또는 수거 가능 품목 안내판이 있고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가공식품, 채소, 조리된 반찬 등을 개인이나 소매점이 가져다 놓을 수 있으며,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일부 지역은 냉장고 외에도 공유 찬장(Pantry)을 함께 두어 상온 보관 가능한 파스타, 쌀, 통조림, 향신료류 등을 따로 관리한다. 음식물 관리 기준은 지자체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온도계 설치, 1일 1회 청소, 기부자 정보 기록 등의 기준이 적용된다.
이 시스템이 자취생에게 유용한 이유는 단순히 무료 음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냉장고에 음식을 기부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환경 실천이 되고, 동시에 식량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 순환 구조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환경적 책임감을 실천할 수 있는 구조적 선택지로 작동한다. 또 하나 중요한 서비스는 ‘Too Good To Go’ 앱이다. 이 플랫폼은 레스토랑, 카페, 빵집 등에서 당일 판매되지 못한 음식을 할인된 가격으로 최대 70%까지 미리 포장해 판매하고 소비자는 앱으로 이를 예약하고 수령하는 방식이다. 자취생들은 이 앱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동시에 음식물 쓰레기 감소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부 매장에서는 채식, 글루텐프리, 유제품 제외 등 식이 제한이 있는 자취생을 위한 맞춤형 필터 기능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Too Good To Go는 사용자별 제로웨이스트 기여 점수를 누적해 디지털 인증 배지를 부여하거나 자주 이용하는 매장과의 포인트 적립 기능도 제공해 실천 유도를 지속시킨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에서도 청년층 1인 가구를 대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실용적 제로웨이스트 플랫폼 모델로 손꼽힌다.
제로웨이스트 자취생을 위한 리필 매장과 무포장 유통 인프라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리필 친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단순히 환경에 대한 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 유통 구조 개편, 소비자 인식 변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특히 파리나 리옹, 툴루즈 같은 대도시에는 무포장 전문 매장(Unverpackt shop)은 물론, 대형 마트 내 리필 스테이션이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대표 유통업체 Biocoop은 전국 700개 매장 중 90% 이상이 쌀, 견과류, 콩류, 말린 과일, 조미료, 세제, 샴푸, 바디워시 등을 원하는 양만큼 덜어갈 수 있는 리필 존을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이 자취생에게 실용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대량 구매가 아닌 소량 구매가 가능하고, 재사용 용기를 들고 갈수록 더 저렴해지는 가격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경제적이면서도 환경적인 소비를 동시에 실천할 수 있다. 또한 리필 구매 고객을 위한 포인트 적립제도 운영되며, 일부 매장은 “용기 가져오면 10% 할인” 같은 혜택도 제공한다.
프랑스 정부는 2021년부터 무포장 유통 확대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켜 2025년까지 전체 유통 제품 중 20% 이상을 리필, 무포장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은 제조사·유통사 모두에게 리필 제품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자취생이 의식적으로 환경을 실천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리필 소비를 접하게 되는 구조를 만든다. 특히 프랑스 리필 매장은 온라인 주문과 결합한 ‘배달 리필 서비스’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자취방 앞까지 리필 세제를 리필팩에 담아 배송해주고, 사용 후 빈 용기를 회수해가는 서비스다. 이는 이동이 번거롭거나 시간 여유가 적은 자취생에게 특히 유용하며 한국의 도시형 리필 인프라 구축에도 실질적 참고가 되는 모델이다. 이러한 구조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선택지가 아닌 기본 소비 방식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취생들이 쓰레기 없이도 생활할 수 있다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만든다.
제로웨이스트 자취생을 위한 프랑스 모델의 시사점
프랑스의 제로웨이스트 정책과 실천 모델이 자취생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개인의 의지를 구조가 지지해줄 때, 실천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즉 혼자 하는 환경 실천이 아니라 같이 연결된 시스템 안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구조가 핵심이다. 공유 냉장고, 음식 나눔 앱, 리필 매장 같은 구조는 모두 선택 가능한 생활 루틴으로서의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자취생처럼 제한된 공간, 시간, 예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조금씩 덜 쓰고,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며, 남은 자원을 돌려줄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꼭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이제 자취생을 환경 실천의 외곽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주요 실천 주체로 상정하고 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공유 부엌, 동네 냉장고, 리필 플랫폼, 음식물 재분배 시스템 등은 소규모 지역 단위부터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는 형태다. 프랑스의 사례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얼마나 생활친화적인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자취생이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 구조,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다음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