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로웨이스트가 문화가 된 나라를 들여다보려 했을까?
그동안 나는 자취생의 시선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루틴이 가능한지, 그리고 각국의 정책이나 시스템이 자취 생활과 얼마나 연결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글을 여러 편 작성해왔다. 독일, 프랑스, 일본, 캐나다, 포르투갈,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 자취생들의 사례를 조사하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그들이 제로웨이스트를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환경과 문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는 쓰레기를 버리는 데 비용이 들고, 어떤 도시는 음식물 쓰레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으며, 어떤 지역은 리필숍이나 무포장 가게가 학교, 병원, 도서관처럼 생활 속 기반 시설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구조를 보면서 나는 점점 생각하게 되었다. “제로웨이스트는 환경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제로웨이스트를 좋은 개인의 실천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취를 하며 느끼는 현실은 조금 다르다. 시간이 없고, 여유 공간도 없고, 정보도 부족한 상태에서 플라스틱을 줄이고, 일회용을 피하고, 쓰레기양을 조절하는 건 생각보다 큰 부담이다.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덜 쓰는 삶이 아니라, 그냥 매번 안 되는 일을 반복하는 삶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실천 잘하는 개인보다 실천이 당연한 사회를 만드는 나라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로웨이스트가 문화처럼 녹아든 국가’를 살펴보면, 지속 가능성과 일상 루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 글에서는 제도, 루틴, 서비스 등을 나눠 살펴봤다면 이번 글에서는 한 국가, 또는 한 도시 전체가 어떻게 그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1인 가구가 늘고, 자취생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설계하는 시대에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것은 단순히 환경을 아끼자는 캠페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실천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다. 그 해답을 이미 삶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나라들이 분명 존재한다. 지금부터 소개할 뉴질랜드와 포르투갈은 바로 그런 나라들이다. 이들은 자원도 예산도 넉넉한 나라가 아니지만, 제로웨이스트가 특별한 선택이 아닌, 일상의 방식이 되도록 설계한 사회로 평가받는다. 과연 무엇이 이 나라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구조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 함께 살펴보려 한다.
뉴질랜드 제로웨이스트 도시 선언이 전국적 시민운동으로 이어지다
뉴질랜드는 제로웨이스트 관련 글로벌 비영리 단체인 ‘Zero Waste International Alliance’(ZWIA)의 핵심 활동 국가다. 1999년부터 시작된 이 흐름은 단순한 분리수거 캠페인이 아니라 지자체 주도의 제로웨이스트 도시 선언으로 확대되며 현재는 주요 도시 대부분이 2030년 또는 2040년까지 쓰레기 제로화를 목표로 지역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와이카토(Waikato) 지역이다. 이곳은 뉴질랜드 제1의 농업 지대이자, 관광지와 대학 도시가 공존하는 곳으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 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대형 폐기물 재활용 워크숍
- 가정용 퇴비화 교육
- 재사용 가구 공방 (고장 난 의자·책상 수리 후 재배포)
- 제로웨이스트 어린이 장난감 도서관
주민들이 폐기물을 버릴 물건이 아니라 공동 자산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 구조는 정부의 보조 없이도 2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2020년 기준 뉴질랜드 내 제로웨이스트 커뮤니티 참여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8%를 넘었으며 이는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출처: Zero Waste International Alliance 보고서, 2021)
핵심 차이점
- 시스템이 아닌 공동체 문화 기반
- 정책이 아닌 생활 기술 중심 (예: 직접 고치기, 분해하기, 공유하기)
한국과의 비교
- 한국은 여전히 배출 후 처리에 초점
- 뉴질랜드는 소비 이전 구조 자체를 바꾸는 생활 문화가 강함
- 자취생이 아닌 마을 전체가 소비를 줄이는 루틴에 참여함으로써 개인의 부담이 줄어듦
포르투갈: 제로웨이스트 리스본으로 만든 도심형 순환 모델
포르투갈은 유럽 내에서 경제 규모나 자원 인프라는 크지 않지만, 시민 중심의 순환도시 실험을 가장 활발히 진행 중인 국가 중 하나다. 그 중심엔 수도 리스본(Lisboa)이 있다. 리스본시는 2016년부터 ‘Zero Waste Lisboa’ 프로젝트를 시작해 공공시설, 학교, 시장, 음식점, 주민센터에 쓰레기 감축 인프라를 의무화했고 시민들은 별도 등록 없이 해당 시스템을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시스템이 있다:
- 시립학교 내 포장 없는 급식 운영
- 버스 정류장 및 지하철역에 리필 정수기 설치
- 마트와 시장 내 다회용 장바구니 대여소
- 쓰레기 무게 자동 측정기 도입 → 배출량 적을수록 세금 감면
또한 리스본시는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무포장 상점 전환 보조금을 도입하여 수많은 골목 상점이 포장 없는 판매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재 리스본 시내에만 약 150개 이상의 제로웨이스트 전문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출처: Lisboa Environmental Strategy 2030 )
핵심 차이점
- 시민이 잘 실천하는 도시가 아닌, 시민이 실천하지 않기 어려운 도시
- 쓰레기를 줄이면 세금도 줄어드는 인센티브 기반 행정 정책
한국과의 비교
- 포르투갈은 도시 차원에서 제로웨이스트 인프라를 일상에 녹여냈지만
- 한국은 아직 개별 가게·소비자 중심으로 분산되어 있음
- 리스본의 공공 리필 인프라, 정수기 배치 등은 자취생에게도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높은 구조
제로웨이스트, 좋은 시민이 아니라 잘 설계된 도시가 답이다
뉴질랜드와 포르투갈의 사례는 우리에게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속 가능한 실천은 개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도시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시민이 잘해서가 아니라, 시민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어떤 구조 안에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도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환경부와 일부 지자체가 주도하는 리필스테이션 시범사업, 용기내 챌린지 포인트 적립제, 다회용기 회수 기반 배달 서비스, 서울시 일부 자치구의 제로마켓, 공공 아이스팩 수거소 등이 대표적이다. 민간에서는 알맹상점, 서울새활용플라자, 제로웨이스트숍 등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서비스와 인프라가 수도권, 특히 서울 중심에 집중되어 있고 가야 하는 곳, 일부러 찾아야 하는 곳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많은 자취생이 거주하는 원룸촌, 대학가, 고시촌, 다가구 밀집 지역에는 리필이나 다회용기 순환, 분리배출 안내 시설이 거의 부재한 상황이다. 즉, 의지는 있지만, 접근 가능한 시스템이 부족한 구조다.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볼 때, 한국에서 자취생들이 제로웨이스트를 더 쉽게 실천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 생활 반경 10분 이내에서 접근 가능한 리필소·무포장 상점 확산
- 동네 슈퍼·편의점과 연계한 다회용기 회수 시스템 구축
- 학교·공공기관·도서관에 공공 정수기 및 재사용 용기 대여소 설치
- 자취방 단지에 소형 순환센터 또는 의류·소형 전자 폐기물 전용 수거함 배치
- 배출량 연계형 인센티브: 덜 버리면 세금 감면 또는 포인트 지급 구조 설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 한 명의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정책 방향이다. 그 구조가 갖춰졌을 때야말로 제로웨이스트가 선택이 아닌 기본값이 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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