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자취일기

자취생이 참고할 세계 제로웨이스트 인프라

limcheese 2025. 7. 3. 10:09

자취생에게 인프라는 곧 제로웨이스트의 실천 가능성이다

 나는 앞선 여러 글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제로웨이스트 정책, 자취생 실천 루틴, 그리고 문화적 배경을 소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보증금 환급제, 일본의 분리배출 구조, 프랑스의 무포장 소비 문화, 캐나다의 커뮤니티 기반 순환 모델 등은 모두 어떻게 그 나라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를 생활 안에서 실천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그 글들을 쓰며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인의 실천 의지보다 어떤 인프라 안에 살고 있느냐가 실천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정책이나 캠페인이 아닌, 도시의 공간 설계와 인프라 배치가 실제로 자취생의 실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의지가 아니라 거리를 중심에 둔 제로웨이스트 콘텐츠다. 특히 자취생은 자동차가 없고, 시간 여유도 많지 않으며, 이동 반경이 제한되기 때문에 가까이에 뭐가 있느냐는 실천 가능성 그 자체와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글에서 ‘도시 설계 차원에서 제로웨이스트 인프라를 구조화한 사례’를 찾기로 했다. 수많은 도시 중에서도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호주의 멜버른을 주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두 도시는 단순히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도시가 아니라,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일상 공간 안에 어떻게 스며들어야 하는지를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다. 공공 수거소, 리필존, 다회용기 회수소, 재사용센터, 수선소 등이 단독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도보 생활권 내에서 연결돼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취생이나 1인 가구가 특별한 의지 없이도 자연스럽게 실천 루틴을 가질 수 있었다.

 

 둘째, 이 도시들은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공구, 가전, 주방도구, 가구 등을 공유하거나 빌릴 수 있는 공간이 동네마다 운영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 자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인프라 설계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1인 가구의 삶의 질, 공간 효율, 생활비 절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들은 한국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생활 반경 15분 도시, 공유 자원 플랫폼이라는 개념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이 도시들이 이미 그 개념을 구체적인 인프라로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의 자취생이 이 도시들을 모델 삼아 실천 루틴을 설계하거나 지자체 캠퍼스 공공기관 단위에서 공간 기반 제로웨이스트 구조를 구상할 때 가장 실질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도시들이 바로 코펜하겐과 멜버른이라고 판단했다. 이제부터 소개할 두 도시의 사례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라는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공간이 바뀌면 내가 더 쉽게 실천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현실적인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자취생이 참고할 세계 제로웨이스트 인프라

 

 

 

코펜하겐 도보 5분 거리 내에 모든 자원 순환 인프라가 존재하는 도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유럽에서 제로웨이스트 도시 설계가 가장 잘 구현된 곳으로 손꼽힌다. 특히 시민 누구나 도보 5~10분 거리 내에서 쓰레기 감량, 재사용, 교환, 리필, 재활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대표적인 공간은 ‘로컬 순환 자원 거점(urban resource station)’이다. 이 공간은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아니라 고장 난 소형 전자기기 수리소. 자전거 타이어 수선 키오스크, 다회용기 세척 및 회수소, 중고 소형가전 교환소, 리필세제 자동 판매기 등이 한 건물 또는 블록 내에 함께 구성돼 있다. 이곳은 주거지역, 학교 근처, 대중교통 중심지 인근에 배치돼 있어 자취생이나 청년 1인 가구도 부담 없이 접근 가능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모든 인프라가 에너지 순환까지 엮여 있다는 점이다. 일부 쓰레기 처리장은 지역 난방과 전기 생산에 연결되어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곧 에너지 절약과 비용 절감으로 연결된다.

 

자취생에게 참고할 요소

  • 하나의 공간 안에 다기능 인프라를 결합 → “갈 곳을 하나만 만들면 된다”는 점
  • 도보 이동 기준으로 설계 → 차량 없어도 실천 가능
  • 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살리는 공간이라는 개념의 전환이 실현됨

멜버른의 공유경제 × 제로웨이스트 공간의 조화

  호주의 멜버른은 제로웨이스트와 공유경제가 유기적으로 융합된 인프라를 도시 곳곳에 배치한 대표적인 사례다. 자취생을 포함한 1인 가구가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공공 자원 순환소와 생활형 공유소가 도시의 리듬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대표 시설은 “Sharing Shed Melbourne”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거점이다. 이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능이 통합되어 있다:

  • 청소도구, 믹서기, 전기히터, 자전거 펌프 등 생활 도구 무료 대여
  • 소형가전 리사이클 교환소
  • 리필할 수 있는 세제 및 식료품 정량 소분 판매소
  • 무료 재봉틀·재단실 → 헌 옷 수선
  • 지역 소상공인 대상 제로웨이스트 포장재 교환 스테이션

이 공유 공간은 구청이 주도하고 지역 협동조합이 운영하며 자취생이나 단기 거주자도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비 자체를 줄이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자취생에게 참고할 요소

  • 빌리는 구조는 보관·폐기 걱정을 줄이고 공간 효율을 높여줌
  • 제로웨이스트가 도구의 종류가 아니라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삶으로 확장
  • 한국도 자취방·청년주택 중심으로 공공 도구 대여소 도입 필요

 

 

한국형 제로웨이스트 인프라, 시도는 시작됐지만 구조는 아직 낯설다

 

한국에서도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공간 기반 인프라 구축이 시작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서울시 성동구, 마포구, 강동구 등에 리필스테이션(무포장 판매소), 공공 아이스팩 수거함, 제로웨이스트 체험존, 다회용기 회수 키오스크, 같은 시설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서울새활용플라자, 알맹상점, 성수제로마켓처럼 제로웨이스트와 재사용 문화 기반 공간도 민간·공공 연계로 운영 중이다. 이런 공간들은 일회용품 줄이기 교육, 리사이클 체험, 제품 수리 워크숍 등도 함께 진행한다. 그러나 문제는 접근성이다. 대부분 수도권(서울 중심)이고, 자취생이 주로 거주하는 대학가, 고시촌, 신도시 등엔 부재하다는 점. 그리고 도시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렵고, 운영 시간이나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즉, 현재 한국의 인프라는 있기는 하지만, 실천에 도움이 되는 구조는 아니다라는 평가가 많다. 실천이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향이 필요할 것 같다. 

 

  • 제로웨이스트 도보 생활권이라는 개념 도입
  • 학교, 공공기관, 지하철역 등 생활 거점에 리필·회수 인프라 집중 배치
  • 자취생 밀집 지역 중심으로 작고 단단한 순환소(소형 수거소, 수리소 등) 확산

 

자취생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면 인프라가 있어야 가능하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간과되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생활 루틴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구조인가?이다. 자취생은 아침에 출근하거나 등교 준비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집 근처의 슈퍼나 편의점, 배달앱을 중심으로 일상 소비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제한된 생활 반경 안에서 무엇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는 실천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조건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용한 샴푸 용기를 리필하고 싶지만 1시간 거리의 리필숍을 가야 한다면, 그건 가능성이 아니라 의무가 되어버린다. 수거함이 집 앞에만 있었다면 분리했을 폐기물도, 버릴 곳이 없다면 결국 일반 쓰레기봉투에 들어간다. 즉, 제로웨이스트는 이것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이것을 할 수 있다의 문제인 것이다.

 

 코펜하겐이나 멜버른의 사례가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쓰레기를 줄이는 선택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길에 가능한 일로 만든 구조. 소비를 줄이는 일도, 뭔가를 고쳐 쓰는 일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으로 편입되게 하는 설계. 한국은 아직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캠페인이나 캠페인성 지원사업보다, 자취방 근처 500m 안에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자취생은 아주 작은 변화에도 빠르게 영향을 받는다. 아이스팩 수거함이 생기면 습관이 생기고, 리필 스테이션이 생기면 다회용기를 챙기기 시작한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결국 습관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그리고 구조는, 자취생의 하루 동선 안에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이제 우리는 환경을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무엇이 있다면 내가 더 쉽게 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