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이 제로웨이스트를 매일 실천한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앞선 글에서 자취생, 1인 가구의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위한 여러 아이템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텀블러, 장바구니, 다회용 수저, 휴대용 비누, 손수건까지. 혼자 사는 자취생이 외출 중에도 쓰레기를 줄일 수 있도록 돕는 실용적인 아이템들을 경험과 함께 추천했다. 그 아이템들은 실제로 환경을 생각하는 내 일상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한동안은 만족스럽게 실천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이 아이템들을 끝까지 실천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지? 준비는 완벽했지만, 정작 매일 실천하기엔 솔직한 심정으로 현실의 피로감과 생활 루틴의 제약이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좋은 아이템을 갖췄다고 해서, 그 실천이 저절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조금 다른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게 된 이유, 무포장 마트를 향해 떠났다가 다시 대형마트로 돌아선 마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지속 가능한 삶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건 단지 실패담이 아니라, 실천을 막는 구조와 현실을 짚어보는 솔직한 기록이기도 하다.
텀블러 세척 스트레스, 제로웨이스트의 걸림막이 되다
제로웨이스트를 처음 실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텀블러와 다회용 수저세트, 장바구니를 준비했다. 카페에 갈 땐 반드시 텀블러를 들고 갔고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 땐 되도록이면 일회용 수저를 쓰려고 노력했다. 처음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할 때는 주변 시선도, 불편함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다. “나 혼자라도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텀블러를 세척할 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냥 그대로 가방에 넣어두고 다음 날 다시 쓸 때마다 찝찝한 기분에 결국 일회용 컵을 주문하게 됐다. 텀블러는 무거웠고, 뚜껑 고무 패킹까지 말려야 했다. 수저세트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원룸에서 따로 씻을 공간도, 말릴 공간도 마땅치 않았고 결국 귀찮음에 밀려 점점 다음에 실천하기로 미뤄지기 시작했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시간을 쪼개 사는 자취생이라면 세척과 건조, 보관이라는 사소하지만 반복적인 과정이 실천을 포기하게 만드는 첫 번째 벽이라는 걸 금방 체감하게 된다. 텀블러와 수저를 샀다는 사실이 실천의 증거가 될 순 없다. 그것들을 계속 쓰게 만드는 구조가 없다면, 결국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무포장 마트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다시 대형마트를 찾았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나는 집 근처 무포장 식재료 매장을 검색했다.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 리필세제를 파는 매장은 40분 거리. 그래도 처음엔 한 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유리병을 들고, 장바구니를 가득 메고. 직접 양을 덜어 담는 재미도 있었고, 쓰레기 없이 장을 본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그건 주말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평일엔 일하느라 바쁘고, 저녁엔 이미 모든 매장이 닫혀 있었다. 밤 10시에 집에 돌아온 나는 결국 편의점과 마트에 의존하게 됐다. 온라인 장보기도 편했지만, 거의 모든 물건이 과포장 상태였다. 라면 하나에도 비닐, 컵밥 하나에도 플라스틱 포크와 종이 커버가 달려 있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면 더 멀리 가야 하고, 더 비싸게 사야 하며,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자취생은 언제나 빠르게, 저렴하게, 가볍게 살아야 한다. 그 둘은 도저히 동시에 유지되기 어려웠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걸 찾을 수 있는 곳이 결국 실천을 포기하게 만든다. 일회용 포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 무포장 옵션이 있는 곳이 더 가까웠다면 나는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리필을 위한 준비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항상 뭔가 빠졌다
리필 세제를 사러 갈 때면 늘 빈 용기를 챙기는 걸 깜빡했다. 세탁세제, 샴푸, 식용유, 고체치약까지 모두 리필로 바꾸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필요한 병이 달랐고, 입구 크기나 재질도 달라서 매번 준비 과정에서부터 지쳤다. 한 번은 유리병을 챙기지 못해서 리필숍에 갔다가 결국 새 용기를 사고 말았다. 그것마저도 다 쓰고 나면 또 들고 와야 했다. 무겁고 번거로웠고, 리필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지도 않았다. 가끔은 마트 세일가보다 더 비쌌다. 이렇게 불편하고 비싼데, 왜 나는 이걸 하고 있는 걸까? 더 심각한 건 혼자 살다 보니 한 번 리필하면 수개월 치가 남는다는 점이었다. 그 사이에 습관이 흐트러지면, 다음번엔 다시 일반 제품을 사게 된다. 리필은 좋은 시스템이지만, 자취생에게는 너무 많은 준비와 보관의 부담을 안겨줬다. 환경을 위한 좋은 선택을 하려고 했지만, 생활이 그 선택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복잡하고 불편했다.
자취생 제로웨이스트 실패도 있었지만, 나는 계속할 것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실패했다. 텀블러를 잊고 나와 일회용 컵을 받은 날, 리필용 유리병을 놓고 나와 다시 플라스틱 세제를 샀던 날, 귀찮다는 이유로 편의점 도시락을 사며 수저와 비닐봉지를 거절하지 못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는 잘해도, 하루는 흐트러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제로웨이스트를 포기한 건 아니다. 실패는 반복되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도 함께 반복되고 있다. 다시 수세미를 꺼내고, 손수건을 챙기고, 한 번 더 생각한 끝에 플라스틱 대신 다른 선택을 한다. 내가 이 실천을 계속하는 이유는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이런 작고 불완전한 시도들이 언젠가는 습관이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나처럼 수없이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 중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지치고, 어떤 날은 아예 잊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다시 돌아오는 걸 멈추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가고 있는 것이다. 실천은 언제나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한 번 멈췄다가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 그게 진짜 꾸준함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오늘도 100점을 받을 수는 없지만, 어제보다 한 번 더 용기를 내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이 길 위에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이 실천을 계속할 것이다. 당신도 계속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간다면 이 방향이 맞다는걸 증명해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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