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자취일기

제로웨이스트 제품은 정말 친환경일까? 생애주기평가(LCA)로 검증하기

limcheese 2025. 7. 7. 09:22

제로웨이스트 생애주기 평가로 검증하기

이제는 제로웨이스트 인증 마크를 넘어 전체 과정을 볼 때

 앞선 글에서 나는 제로웨이스트 소비를 위한 국내외 인증 마크를 소개한 바 있다. 환경표지제도, ECOCERT, Cradle to Cradle, Plastic-Free Certified 등 다양한 마크들이 친환경 제품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 그리고 자취생처럼 소비 선택에 실용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인증이 붙었다고 해서 무조건 친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환경에 좋다는 고체 치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건 아닐까?” “다회용기를 반복 세척하며 쓰는 것이 일회용보다 정말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다. 실제로 환경을 생각하고 제품을 고른 소비자가 결과적으로 더 큰 환경부하를 발생시킨다면 그건 선의의 착각에 가깝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다. LCA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생산되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어떤 환경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수치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즉, 단지 이건 종이니까 괜찮아가 아니라 이 종이를 만들고, 쓰고, 버릴 때까지 환경에 미치는 총합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생애주기 평가(LCA)의 구조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한다 

생애주기 평가는 단순히 제조공정만 보는 것이 아니다. 제품이 ‘처음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버려지는 순간까지’ 모든 단계를 추적하고 분석한다. 국제표준 ISO 14040과 ISO 14044에 기반해 다음 아래와 같은 5단계를 거친다.

  1. 원료 채취 단계: 어떤 자원을 얼마나 사용했는가
  2. 제조 및 가공 단계: 생산 공정에서의 에너지, 폐기물, 탄소 배출량
  3. 운송 및 유통 단계: 물류 과정에서의 연료 소비 및 온실가스 발생
  4. 사용 단계: 세척, 보관, 충전 등의 반복적 사용 중 에너지·물 사용량
  5. 폐기 및 재활용 단계: 수명 종료 후 재활용 가능성, 매립·소각 배출량

예를 들어, 유리 용기가 플라스틱보다 재활용률이 높다고 해도 유리를 만들기 위한 고온 가열 과정에서 플라스틱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쓰였는지, 세척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물과 세제를 소비하는지 등을 함께 따져야 한다. 실제로 국내 LCA 사례 분석에 따르면 스테인리스 빨대 1개가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1개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어지는 시점은 약 130회 사용 이후였다. 이처럼 LCA는 제품 하나가 친환경적이냐 아니냐를 감성이나 이미지가 아닌 수치 기반의 비교로 결정해 준다. 이제는 “재사용하면 친환경”이라는 단편적 기준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오래, 어떤 방식으로 쓰는가까지 고려하는 판단이 필요한 시대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전 과정을 생각하게 된다.

 

 

고체치약, 면 생리대, 유리용기..  친환경 제품은 정말 친환경일까?

그렇다면 흔히 친환경 또는 제로웨이스트 제품이라고 불리는 아이템들은 실제로 생애주기 평가(LCA) 기준에서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될까? 겉으로 보기엔 모두 다회용이고 포장이 적지만, LCA 관점에서는 재료, 제조 과정, 유통 방식, 세척 및 폐기 과정까지 다 따져야 한다. 자취생들이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대표 제품군을 기준으로 LC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환경성 랭킹표를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천 손수건 : 가장 안정적인 제로웨이스트 아이템으로 꼽힌다. 제작 공정에서의 탄소 배출이 적고, 기계 세탁이나 자연 건조만으로도 위생 유지를 할 수 있어 수백 회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키친타월이나 물티슈처럼 반복 소비되는 일회용 제품을 대체하기에 가장 이상적이다. 특히 자취생에게는 관리 부담이 적고 공간 차지도 적다는 점에서 실용성과 환경성을 모두 갖춘 선택이다.

 

2. 실리콘 지퍼백 : 두 번째 실리콘 지퍼백도 우수한 편이다. 초기 제조 시 탄소 배출량은 다소 있으나, 100회 이상 반복 사용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일회용 비닐백이나 랩 대비 탄소 배출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냉장·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하고, 접을 수 있어 수납도 용이하다는 점에서 작은 주방을 가진 1인 가구에게 매우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3. 고체 샴푸 & 치약 : 친환경적 이미지와 달리 조건부 친환경이다. 튜브형 치약보다 포장 쓰레기는 확실히 적지만, 고체 제품은 성형과 건조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제품 밀도와 보존력에 따라 1회 사용량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유리병이나 금속 용기에 담기는 경우, 그 용기의 무게나 반복 세척에 따른 환경 부담까지 고려해야 한다. 결국 고체 제품이 진짜 친환경이 되려면 내용물만이 아니라 포장재와 사용 습관까지 고려된 선택이어야 한다.

 

4. 스테인리스 빨대 : 강한 내구성을 가진 만큼 재사용 효과가 뛰어나지만 최소 130회 이상 사용해야 플라스틱 빨대보다 탄소 배출이 적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온 금속 성형이라는 제조 공정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가볍게 쓰고 버릴 목적이라면 오히려 환경에 더 부담될 수 있다. 

 

5. 면 생리대 : 상황에 따라 환경성이 크게 달라진다. 재사용 횟수가 많을수록 친환경적이지만 세탁 시 따뜻한 물, 합성 세제, 건조기 사용이 반복되면 누적 에너지 소비량이 일회용 생리대보다 많아질 수 있다. 또한 위생과 편리성을 고려할 때, 생활 루틴과 환경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비효율적인 실천이 될 가능성도 높다.

 

6. 유리 밀폐용기 : 친환경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매우 조건부 친환경이다. 유리 제작 시 고온 가열로 인해 탄소 배출량이 많고 무게로 인해 운송 과정에서 추가 에너지가 발생하며 파손 시 재활용이 어려운 구조인 경우도 있다. 다만, 2년 이상 장기적으로 반복 사용하고, 다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면 플라스틱 대비 환경성을 갖추게 된다.

 

 

 위의 자료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서울연구원, OpenLCA 등에서 발표한 LCA 데이터 및 비교 분석 리포트를 기반으로 정리한 것이며 이 제품이 친환경이다가 아니라 이 조건 하에서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해석이 핵심이다. 즉, 위 내용을 참고할 때는 내 루틴에서 얼마나 자주 오래 쓸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하는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출퇴근이 잦고 외부 활동이 많은 자취생이라면 실리콘 지퍼백, 천 손수건을 루틴에 넣는 것이 LCA상 효율적이다. 조리와 세탁이 많은 생활 루틴이라면 고체 세제, 고체치약보다 리필형 액체 제품이 에너지 효율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주방 공간이 작고 세탁 여건이 제한적이라면 유리보단 경량 스테인리스와 천 주머니 구성으로 탄소배출과 관리 부담을 낮출 수 있다. 결국, 제품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는 그 자체보다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LCA는 그 판단을 수치로 도와주는 도구일 뿐 실천의 진짜 주체는 사용하는 나의 습관과 환경에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친환경이라 믿었던 제품들도 모두 조건과 사용 방식에 따라 환경성의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짜 친환경 제품이란 탄생부터 폐기까지의 총합을 줄인 제품, 그리고 그 제품을 오래, 반복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는 습관이 더해졌을 때 가능해진다.

 

 

자취생에게 진짜 친환경은 덜 바꾸고, 오래 쓰는 것

 자취생으로서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고민하다 보면 무엇을 사야 친환경일까?라는 질문에 자주 부딪힌다. 그러나 LCA의 관점으로 보자면, 진짜 중요한 건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산 것을 얼마나 오래, 효율적으로 쓰는가에 있다. 많은 제로웨이스트 초보자들이 일회용품을 덜 쓰겠다는 의지로 텀블러, 빨대, 고체치약, 면 수세미 등 새로운 친환경 아이템을 대거 구입하지만 관리가 어렵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몇 번 사용 후 서랍 속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친환경 소비는 오히려 제품 생애주기에서 더 많은 낭비를 야기할 수 있다.  LCA는 자취생에게 중요한 기준은 새 물건을 덜 사고, 한 번 산 물건을 오래 쓰고, 쓰는 동안 세척과 유지에 드는 자원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이런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이 그 어떤 인증보다 강력한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된다. 제로웨이스트 제품이 친환경이냐를 묻기보다 내가 그 제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짜 친환경은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지속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