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에서 일로 연결되는 시대
제로웨이스트는 더 이상 개인의 작은 실천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와 순환 경제가 본격화되면서 제로웨이스트가 하나의 산업이자 전문직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기업은 제품 설계에서부터 폐기 이후까지 고려한 ‘제품 생애주기(LCA)’ 기반의 포장 전략을 수립하고, 도시 단위에서는 리필소, 순환 물류 시스템, 재자원화 설계 등 전문적인 인력이 투입되는 제로웨이스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자취생처럼 아직 경력 초기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층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새로운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왜냐하면 제로웨이스트 관련 직업군은 전통적인 환경직무 외에도 디자인, 물류, 교육,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환경을 단순히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기획자와 기술자, 서비스 설계자로서 일을 통해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쓰레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세상을 실제로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취생이 도전해 볼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기반의 신직업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리필 디자이너, 제로웨이스트를 설계하는 사람들
제로웨이스트가 단순한 실천을 넘어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제품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전문 직무, 바로 리필 디자이너(Refill Designer)가 주목받고 있다. 리필 디자이너는 제품을 다 쓰고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다 쓰고도 다시 쓸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직업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단지 포장을 예쁘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용기 구조, 리필 방식, 유통 경로, 소비자 사용 경험까지 전반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샴푸 용기의 경우 재질을 재활용할 수 있는 PP(폴리프로필렌) 단일 소재로 구성하고 뚜껑을 나사형으로 만들어 세척 후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식이다. 또는 액체 제품을 종이 파우치에 담아 리필할 수 있는 포장으로 만들고 내용물을 소분해 판매함으로써 불필요한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설계는 단순히 환경에 좋다는 차원을 넘어서 기업의 ESG 평가와 브랜드 이미지, 생산·회수·세척 비용 효율성까지 고려한 전략적 직무로 확대되고 있다. 이 직무는 디자인 전공자만 아니라 산업공학, 소재공학, 유통기획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가 진입하고 있으며 실제로 국내외 브랜드에서는 리필 디자이너 직군을 점차 별도로 두고 운영하는 추세다. 국내 기업 아모레퍼시픽은 재사용 용기 + 리필 파우치 구조를 표준화하며 패키지 디자인팀 내에 순환설계 파트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미국의 ‘Loop’ 프로젝트처럼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를 개발하고 이것이 다시 유통되고 회수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리필 디자이너의 역할이 핵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취생 입장에서도 이 직업은 멀지 않다. 1인 생활자 특유의 관찰력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생활 속 경험을 구조적 디자인으로 전환하는 기획력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 가능한 진로다. 리필 디자이너는 소비를 줄이는 사람이라기보다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 제품 구조를 설계하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자라고 할 수 있다.
순환 설계 분야에서 리필 디자이너와 함께 주목받는 또 다른 직무는 ‘순환 포장 개발자(Circular Packaging Developer)’다. 이들은 단순히 포장을 종이로 바꾸거나 생분해성 재질을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제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며 회수되고, 다시 사용되는 전 과정을 순환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포장이 단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유통의 일부이자 자원으로 회수되어 다시 쓰일 수 있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기 위한 전략적 설계를 하는 직무다. 예를 들어 기존의 택배 박스를 대신해 접을 수 있는 패딩백 포장재를 설계하고 이것을 소비자에게 배송한 후 다시 회수하여 세척·재포장할 수 있도록 물류 회수 경로와 회차당 비용, 소비자 반납 편의성까지 고려한 패키지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이 직무는 환경공학적 이해뿐 아니라, 유통 물류, 소재 내구성, 사용자 행동 데이터, 포장재 회수 가능성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기획할 수 있는 융합형 역량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순환 포장 개발자는 어떤 소재가 몇 회 사용 후 파손되는지, 소비자가 회수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떤 포장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지까지 고민한다. 실제로 일부 글로벌 뷰티 브랜드와 식품 브랜드에서는 이런 순환 포장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전담 개발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 친환경 커머스 플랫폼에서도 순환 포장 설계자를 별도 직무로 분류하고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취생 중에서 유통업무나 물류센터 경험이 있거나 제품을 받아볼 때 포장재 구조에 대한 불만과 개선 아이디어를 떠올려본 적이 있다면 이 직무는 실천에서 출발해 구조로 연결되는 현실적인 진로 선택이 될 수 있다.
순환물류 매니저, 자원회수 코디네이터: 쓰레기 흐름을 관리하는 사람들
제로웨이스트가 가능하려면 단순히 덜 만들고 덜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배출된 자원을 다시 회수하고, 이를 새로운 흐름 안에 넣을 수 있는 물류 시스템이 필수다. 이 지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업이 바로 ‘순환물류 매니저(Circular Logistics Manager)’다. 이 직업은 쓰레기의 흐름을 분석하고 회수 가능한 자원을 수거-세척-분류-재공급하는 전체 루트를 설계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리필 스테이션에서 사용된 유리병을 수거한 뒤 이를 세척소로 보내고 세척 완료 후 다시 매장에 공급하는 순환 물류 경로를 최적화한다. 서울시 일부 자원순환 프로젝트에서는 실제로 이 업무를 담당하는 민간 물류 인력을 순환매니저로 채용하고 있으며 청년층 물류 관리자, 공유 서비스 기획 경험자들에게 열린 진입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직무는 ‘자원회수 코디네이터(Resource Recovery Coordinator)’다. 이들은 공공기관, 학교, 기업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폐기물 흐름을 분석하고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분리배출 교육, 수거체계 설계, 계절별 폐기 전략 등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ESG 평가 기준에 따라 환경 실적이 중요한 기업에서 내부 환경담당자나 외부 컨설턴트로 수요가 늘고 있는 직무다. 자취생 입장에서는 물류나 환경공학 전공이 아니더라도 공간 분석, 생활 관찰,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이런 실무형 순환 직무에 참여하거나 스타트업 인턴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제로웨이스트 직업에 도전하는 자취생을 위한 현실적 팁
제로웨이스트 직업이라고 하면 환경학과나 디자인 전공자만 가능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분야는 문과·이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적으로 인재를 필요로 한다. 기획,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교육, 공공정책, 공간설계, IT 등 기존 직무 역량을 환경 구조 안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전공 자취생이라면 친환경 브랜드의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기획하거나 리필 제품의 브랜딩과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할 수 있다. 또는 SNS 채널을 운영하며 환경 정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로도 활동 가능하다. 실제로 제로웨이스트 분야에서는 그린 마케터, 환경 교육 크리에이터 같은 신직업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창업도 하나의 현실적인 방향이다. 리필 스테이션, 다회용기 세척 서비스, 업사이클링 디자인 브랜드 등 제로웨이스트 기반의 소규모 창업은 초기 자본보다는 기획력과 지역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친환경 예비창업자를 위한 공간 지원, 컨설팅, 판로 연계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어, 자취생 창업자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환경에 관심이 있다는 감정만으로도 이 분야의 충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천에서 출발해 구조로 연결되는 경험, 자취방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이 사회 전체를 바꾸는 직업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 그게 바로 제로웨이스트가 직업이 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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