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의 제로웨이스트가 진로가 되기까지
앞선 글에서 우리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으로 그치지 않고 직업과 업무로 연결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리필 디자이너, 순환 포장 설계자, 환경관리자처럼 쓰레기를 줄이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 뒤에는 실무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다양한 직군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더 이상 환경 직업은 환경공학 전공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디자인, 마케팅, 교육, 물류, 기획, 콘텐츠 등 거의 모든 전공자가 자신의 역량을 제로웨이스트 산업에 연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시대다. 이 글에서는 자취생 입장에서 특히 고민이 많은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분야로 어떤 제로웨이스트 직업에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거창한 스펙이 아니라 내가 실천해 본 경험, 내가 관찰한 문제, 내가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을 환경 실천 구조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보는 힘이다.
디자인·예술 전공자: 순환 구조를 시각화하고 설계하는 역할
디자인이나 예술 계열 전공자들은 제로웨이스트 분야에서 가장 다양한 진입 경로를 확보할 수 있는 전공군 중 하나다. 쓰레기를 줄이는 실천은 결국 구조를 바꾸는 일이며 그 구조는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데 필요한 건 바로 디자인적 사고력과 시각 언어의 감각이다. 앞선 글에서 소개했듯 대표적으로 제품 구조를 바꾸는 리필 디자이너, 포장을 자원으로 바꾸는 순환 패키지 디자이너, 재활용·업사이클링을 활용한 리사이클 크리에이터 등이 있다. 제품디자인 전공자는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의 구조, 포장 없이도 제품이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는 완충 설계, 소재의 재질에 따른 조립·해체 방식 등을 고안하는 데 적합하다. 시각디자인 전공자는 제로웨이스트 브랜드의 시각 정체성, 캠페인 포스터, 분리배출 가이드 인포그래픽, 친환경 제품 라벨링 등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예술과 환경교육이 만나는 교차 지점이다
국내에서는 예술기획자와 미술 교육가들이 환경을 주제로 전시, 워크숍,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독립 예술공간에서는 버려진 생수병 뚜껑과 신문지를 활용해 조명 오브제를 만드는 제로웨이스트 디자인 워크숍을 매달 진행하고 있으며 참여자 대부분이 초등학생부터 20대 1인 가구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한 만들기 체험이 아니라 쓰레기를 자원으로 전환하는 감각을 시각적 창작을 통해 체화하는 구조를 경험하게 된다. 해외에서는 더 구조화된 움직임이 있다. 영국의 같은 단체는 기후 위기와 문화예술의 접점을 탐구하며 디자이너·공연예술인·전시기획자 등을 대상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주제로 한 창작 워크숍과 커리큘럼 개발을 진행한다. 국내에서도 문화예술교육진흥원,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등이 예술인 환경교육 강사 양성 과정, 제로웨이스트 아트 프로젝트 공모전, 지속 가능 디자인 전시 지원 사업 등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자취생이 이런 길에 접근하고 싶다면 꼭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겪은 제로웨이스트 실천 경험을 바탕으로 공방 클래스 기획, 워크숍 자료 개발, SNS용 카드뉴스 제작, 일러스트 작업 등을 포트폴리오로 구성하면 좋다. 작은 시도라도 실제 환경 실천과 시각 콘텐츠를 연결한 경험은 향후 친환경 브랜드 협업, 제로웨이스트 교육 콘텐츠 제작, 환경 문화기획 직무로 확장될 수 있다. 결국 디자인·예술 전공자는 “어떻게 버릴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다시 쓰이게 만들지를 상상하는 사람”이다. 그 상상은 구조로, 콘텐츠로, 교육으로 현실화되며 제로웨이스트 산업에서 사람과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로 이어진다.
인문·사회 전공자: 실천이 지속되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들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단지 기술이나 디자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환경 구조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왜 실천하지 않는지를 이해하고 그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언어, 교육,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인문·사회 전공자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학과나 언론정보학과 전공자는 환경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기획하거나, 환경 콘텐츠를 스토리텔링하는 직무로 진출할 수 있다. SNS 콘텐츠 기획자, ESG 커뮤니케이터, 환경 홍보 콘텐츠 제작자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2023년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제로웨이스트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보다 콘텐츠 기획과 메세징 전략에 강한 문과 출신 활동가들을 대거 섭외했다. 그들은 타깃층에 따라 어떤 언어가 부담스럽지 않은지, 어떤 이미지는 감정적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기획하며 제로웨이스트 메시지를 더 오래 더 넓게 전파하는 일을 맡았다. 또한 교육학, 사회복지학, 문예창작, 심리학 등 전공자는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바탕으로 환경교육 콘텐츠 개발자, 제로웨이스트 체험 프로그램 운영자, 환경교육 강사, 커뮤니티 운영자 등으로 활동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청소년, 노년층, 저소득층 등 환경교육 사각지대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경험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실제 사례로 2022년 경기 시흥시의 한 평생교육원에서는 문예창작과 출신 청년 기획자가 지역 주민과 함께 제로웨이스트 수필쓰기 워크숍을 운영했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버렸던 물건의 기억을 글로 쓰고 그 글을 나누며 쓰레기에 대한 감정적 관계를 재구성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신문과 환경단체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해당 기획자는 이후 공공기관 제로웨이스트 콘텐츠 사업에 전담 기획자로 채용되기도 했다. 자취생이라면 평소 환경 관련 콘텐츠를 직접 작성하거나 캠페인 구호나 슬로건, 분리배출 가이드 문안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그 자체가 콘텐츠 포트폴리오이자 직무 진입의 실질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인문·사회 전공자는 쓰레기를 직접 줄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줄이게 만들 수 있는 구조 설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이공계 전공자: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원 흐름을 바꾸는 힘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단순한 의지나 캠페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쓰레기의 흐름을 감지하고 데이터로 분석하며,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실무자가 필요하다. 이 역할은 자연과학 및 공학계열 전공자, 특히 환경, 재료, 생명, 산업공학, 컴퓨터공학, 데이터분석 전공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분야다. 대표적인 직무로는 재활용 소재 개발자, 생분해성 포장재 연구원, 제품 생애주기(LCA) 평가 분석가, AI 기반 분리배출 시스템 개발자, 환경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 순환 물류 최적화 설계자 등이 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제로웨이스트가 실현되게 만드는 기술 기반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최근 국내 AI 스타트업 한 곳에서는 사진 인식 기반 쓰레기 분류 앱을 개발해 사용자가 음식 포장 용기의 사진을 찍으면 해당 재질과 배출 방법, 지역별 분리배출 요건을 자동으로 안내해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컴퓨터공학, 인공지능, 환경공학 전공자들이 협업해 진행했고 서울시 분리배출 시범사업에 채택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로 한 플라스틱 소재 연구소에서는 미생물 기반 생분해성 소재를 개발하며 패스트푸드 매장용 포장재 교체에 기여했다. 이들은 단지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시간, 온도, 사용 조건에 따라 실제 현장에서 분해될 수 있는 수준까지 고려해 설계한다. 이처럼 기술 기반 직무는 단지 연구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류회사에서는 다회용기 회수 루트를 최적화하는 알고리즘 개발자, 제조기업에서는 포장단계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줄이는 시뮬레이션 모델 개발자, 유통회사에서는 탄소감축량을 계산해 소비자 리워드로 연결하는 API 개발자가 활동하고 있다. 자취생 중에서 자연계열이나 IT 전공자라면 작은 관심으로 시작해도 좋다. 자신의 전공 지식을 활용해 일상 속 쓰레기 배출량을 수치로 기록하거나 소규모라도 분리배출 알고리즘을 만들어보거나 환경 데이터를 시각화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그 자체가 실전 포트폴리오가 된다. 그리고 그 포트폴리오야말로 제로웨이스트 기술직무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탄탄한 기반이 되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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